【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
“나이 들면 다 그래.”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면 으레 하는 말이다. 나이 든 부부의 성생활을 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성기능이 떨어지면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성생활을 포기하거나 끝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나이와 성생활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즉, 성기능과 성생활은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젊은 부부보다 비중이 작긴 하지만 60대, 70대, 80대에도 왕성하게 성생활을 하는 부부가 분명히 있다. 안 해서 그렇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성기능이 뚝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성생활을 포기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생활이 펼쳐져야 한다. 인생 2막이라는 말처럼 성생활에도 2막이 필요하다. 성생활 2막의 주인공이 되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CASE 1. 친구가 부러운 남편 이야기
병철 씨(가명)는 대학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의 이야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원래는 모임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가는 친구였는데 그날따라 말이 많았다. 더 젊어진 것 같고 어딘가 의기양양해 보이기도 했다.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친구는 3년 전 소리 소문 없이 이혼했다고 했다.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한참을 폐인처럼 지내다가 운명처럼 지금의 아내를 만나 6개월 만에 재혼을 했다고 덧붙였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내의 나이가 35살, 무려 13살 연하라는 이야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전 아내와는 섹스리스였지만 지금 아내와는 속궁합이 너무 잘 맞는다고 하자 다들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한턱 쏴!’라고 몰아붙였다. 친구는 정말로 그날 시원하게 한턱을 쐈다. 그리고 아내가 기다린다며 1차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철 씨도 그날은 일찍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각방을 쓰는 아내가 방문을 열었다. 아내는 “일찍 자.”라는 말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아내의 말과 달리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속궁합이 좋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자꾸 맴돌았다. 사실 병철 씨는 성욕이 뚝 떨어진 지도, 발기가 시들해진 지도 오래됐다. 부러움과 좌절과 희망이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CASE 2. 남편에게 두 번 거절당한 아내 이야기
1년 전, 정화 씨(가명)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했다. 정화 씨가 못내 섭섭해 하자 아들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자신이 빠져줄 테니 아빠와 데이트도 많이 하고 다시 신혼처럼 사랑하며 지내라고 했다. 당시에는 ‘이 나이에 무슨 신혼이냐?’고 웃어넘겼다.
아들이 유학을 떠나자 남편과 집에 둘만 있는 시간이 어색하기만 했다. 최근 5년 동안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들의 입시와 유학 준비를 챙기느라 남편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미안한 점이 많았다. 남편이 성관계를 원했는데 피곤하다고 계속 거절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정화 씨는 아들의 말처럼 다시 남편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졌다.
그날 밤 남편에게 둘만 아는 신호를 보냈다.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남편은 신호를 모른 척했다. 성욕이 남달랐던 남편이라서 이상했다. 며칠 뒤 다시 신호를 보냈다. 이번에는 남편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도 오십이 넘었어. 이제 늙어서 못 해!” 당황을 넘어 황당했다. 남편에게 거절을 당하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일부러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못 하는 건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하자 남편과 잘 지내보고 싶은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성관계 생존자가 되고 싶나요?
생존자. 살아남은 사람, 혹은 살아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몇 년 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데이비드 리 박사는 ‘성생활 생존자(sexual survivors)’라는 생소한 말을 세상에 알렸다. 리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생활이 활발한 80대 노인들의 성 만족도는 중년층보다 훨씬 더 높았다. 나이가 들면 발기부전 등과 같은 신체적인 성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하지만 성관계의 만족도는 80세 이상 연령층에서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리 박사는 활발한 성생활을 즐기는 80대 이상의 노인을 성생활 생존자로 불렀다. 아울러 나이와 성생활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도 “나이와 성생활은 관계가 없다.”며 “성생활은 몸의 건강 상태, 배우자와의 심리 정서적 관계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100세 시대이자 건강관리를 필수로 여기는 시대다. 많은 이가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서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다. 그래서 70대, 80대가 되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경우가 많고 몸이 건강할수록 성관계에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예전과 달리 성생활을 쉬쉬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한다.
김숙기 원장은 “가끔 노년 부부가 젊은 부부보다 더 성관계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생활이 건강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기능 저하, 그 후…
나이와 성생활은 상관없지만 성기능은 다르다. 야속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성기능이 떨어진다. 남편의 발기부전, 아내의 질 건조증, 불감증 등이 대표적이다.
아내와 남편은 성기능 저하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먼저 발기부전이 생긴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김숙기 원장은 “고개 숙인 남자라는 말이 있듯 성기능은 남자를 고개 숙이게 만드는 요인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남편은 아내보다 성, 특히 성기능에 큰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기부전이 생기면 수치심과 우울감을 심하게 느끼는 남편도 있다. 그저 발기부전이 생겼을 뿐인데 ‘인생이 끝났다.’라고 좌절하기도 한다.
또한 아내의 성기능 저하까지 자신과 연관을 짓는 남편도 있다. 자신의 테크닉, 사이즈에 만족을 못해서 아내의 성기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아내도 성기능을 남편과 연관시킨다. 특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아내는 자신의 성기능이 떨어진 이유를 남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남편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서 성욕이 생기지 않고, 성기능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남편이 성기능이 떨어진 자신을 더는 여자로 보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과 사이가 좋은 아내는 성기능이 떨어진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김숙기 원장은 “아내들은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정서적인 친밀감, 포옹, 키스, 쓰다듬기, 따뜻한 격려와 칭찬, 공감 등으로 남편의 사랑을 충분히 느낀다.”며 “애정이 있는 부부라면 남편의 성기능 저하가 아내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조언한다.
성기능 뚝 떨어져도 여전히 뜨거운 부부들 노하우 5가지
중년 이후 부부의 성관계를 방해하는 진짜 ‘빌런’은 성기능 저하가 아니다. 바로 노화에 굴복하고 아무런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 자세다.
성관계에 적극적인 부부들은 성기능 저하라는 복병에도 개의치 않고 둘만의 뜨거운 사랑을 이어가는 노하우가 있다.
첫째, 성기능 저하를 몸의 ‘문제’로 보지 않고 몸의 ‘변화’로 인식한다.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변화로 인해 불편한 점이 없는지 도와줄 점이 있는지부터 살핀다. 성기능 저하에 대한 원망, 비난, 공격을 일체 하지 않는다.
둘째, 대안을 찾는다. 삽입 섹스가 어려우면 자위 도구, 구강성교 등을 이용하여 배우자와의 특별한 사랑놀이를 이어 나간다.
셋째, 배우자의 성적 욕구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외로움, 민망함을 느끼지 않도록 성적 욕구에 적절히 반응한다. 성적 욕구가 생기지 않으면 현재 심리 상태를 솔직히 설명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성적 욕구를 느낀 남편이나 아내도 상대의 의사를 존중한다. 거절했다는 이유로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한다.
넷째, 섹스 대화를 나눈다. 특히 ‘어떻게 해줄 때가 좋아?’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그리고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다섯째, 성관계를 자주 한다. 성관계를 의무가 아닌 놀이나 취미로 생각하면서 즐긴다. 실제로 성관계를 자주하면 성기능 저하를 늦추는 효과까지 볼 수 있다.
김숙기 원장은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에서 부부 불화와 가족 갈등을 전문으로 상담한다. 숭실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이며 KBS 사랑과 전쟁, KBS 아침마당, EBS 부모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족 갈등 솔루션을 제공했다. 마음콘서트 ‘괜찮아 괜찮아’에서 전문가 진행을 맡기도 했다.
정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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