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재혼을 앞둔 사람은 두 배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대한민국에는 이렇게 두 배로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두 배로 행복해야 할 재혼은 두 배 더 혹독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재혼 가정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복잡한 방정식 때문이다. 한 번의 결혼으로 이미 많은 관계가 생겨버린 재혼은 초혼보다 많은 갈등이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재혼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재혼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 두 배로 행복할 준비 과정을 알아본다.
명임 씨(가명, 41세)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무거운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었다. 딸은 시어머니와 통화하면서 “할머니, 저는 콩쥐고 세현이 언니는 팥쥐 같아요.”라고 말했다. 재혼하면서 데려온 친딸 세현이보다 남편의 딸 진하에게 사랑을 쏟은 명임 씨였다.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키웠다. 그런데 자기가 콩쥐라니 기가 막혔다. 아이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감정이 격해질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날 밤 억울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놨다. 그런데 남편의 태도는 더 기가 막혔다. 그 역시 오해하고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진짜 팥쥐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어머니가 찾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너 내 손녀 지금까지 차별했니?”라고 따져 물었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친딸 세현이에게도 “너도 내 손녀 괴롭혔니?”라고 화를 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딸이 새아빠 눈치 보는 것도 참고 잘해보려고 했는데 가족들에게 자신은 모질디모진 계모였다. 재혼한 것이 후회되고 또 후회됐다.
말이 정말 잘 통했다. 형식 씨(가명, 50세)는 드디어 평생의 반쪽을 찾았다고 장담했다. 돌싱카페 정모에서 숙진 씨를 만나 첫눈에 반한 형식 씨는 서둘러 청혼해 재혼에 골인했다. 처음은 꿈같은 신혼생활이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신다는 숙진 씨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수십 통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됐다. 아내는 아침이 되어서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안도의 마음은 잠시, 누구와 그 시간까지 놀았는지 궁금했다. 잠겨 있지 않은 아내의 휴대폰 메신저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아내는 전남편과 그 시간까지 술을 마신 거였다. 그것도 전남편의 친구들도 함께.
자는 아내 얼굴에 전아내 얼굴이 오버랩됐다. 형식 씨가 이혼한 이유는 전아내의 외도였다. 마흔이 넘어 중매로 만난 아내는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을 피웠다.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아보려 했지만 아내는 진심으로 미안해하지 않았다. 결국 이혼했다. 형식 씨는 지금 아내가 바람은 피우지 않을 사람이라고 확신해서 결혼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참담했다. 분명히 전남편과의 관계가 깨끗이 정리됐다고 했는데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지금 형식 씨는 결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더 쉽다고 한다. 하지만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일이 있다. 결혼이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훨씬 어렵다. 그림으로 비유해보자. 아무것도 없는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원하는 색깔이 잘 나온다. 그러나 이미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원하는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 흰 도화지는 초혼이고,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는 재혼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양쪽 다 재혼일 경우에는 단순히 두 사람만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앓은 두 가족이 합치는 것이어서 매우 복잡한 구조를 띠는 가족 형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재혼 가정은 갈등의 양상이 복잡하다.
재혼은 초혼보다 이혼율도 높다. 많은 이들이 폭력, 외도, 술, 경제 문제 등 이혼 사유가 됐던 문제들을 그대로 가지고 재혼하기 때문이다. 이혼하게 된 이유를 고치고 재혼해야 재이혼을 예방할 수 있다.
새 출발을 하려고 재혼을 하지만 이전에 결혼했던 경험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김미영 소장은 “재혼 가정의 일상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져 어느 정도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며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서로 이해하면서 재혼 가정을 꾸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재혼은 결코 성급해서는 안 된다. 재혼하기 전에 많은 문제를 풀고 갈등에 대비해야 행복한 재혼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그 방법들을 소개한다.
이혼으로 인해 한 번의 아픔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면 상대방을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화약고를 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재혼 가정은 경제적인 부분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결혼에 실패해봤기 때문에 쉽게 속사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재산 다툼 등을 고려해 혼인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 사는 재혼 부부가 많은 것은 이런 경제적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미영 소장은 “재혼 가정이 온전한 가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믿음이 꼭 필요하다.”며 “불신이 쌓이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믿자. 그리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자. 진심은 기어코 신뢰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재혼 가정의 자녀는 부모의 이혼(또는 사망), 재혼 등으로 슬픔, 분노, 심리적 충격 등을 경험하게 된다. 배우자의 자녀와 잘 지내려면 이런 마음을 충분히 발산하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김미영 소장은 “자녀들은 부모의 재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 있고, 거부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새 부모는 새 자녀의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고 친부모와 자녀 간의 특별한 유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에게 저항하거나 학교나 친구 관계에 적응을 못할 수도 있다.
새 부모는 자녀에게 잔소리 한 번을 하려고 해도 의붓자식을 괴롭히는 나쁜 새엄마, 새아빠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자녀들은 자녀대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다. 새엄마와 새아빠와 사는 불쌍한 장화홍련 콤플렉스로 자신들을 옭아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재혼해서 그렇다.’라고 자책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 모두 주위의 편견으로부터 당당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호칭도 ‘아저씨’, ‘아줌마’ 등 자녀들이 편한 대로 부르게 하는 것이 좋다.
김미영 소장은 “새 자녀와 기본적인 양육 태도, 기대하는 역할, 규율 사항 등을 미리 합의해두면 문제가 터졌을 때 냉정하고 일관적인 태도로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① 상대방이 이혼했다면 이혼 이유가 되는 문제를 교정했는지 체크하자.
② 원 가족과의 밀착 여부와 자녀와의 친밀 여부를 체크하자.
③ 전 배우자와의 관계가 말끔하게 정리되었는지 체크하자.
④ 공개하지 않은 빚이 있는지도 체크하자.
1. 성급하게 재혼하지 마세요.
2. 초혼과 같은 기대를 하지 마세요.
3. 전 이혼 사유를 극복한 후 재혼하세요.
4. 자녀가 새 부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밀감 형성을 위해 노력한 후 재혼하세요.
5. 재혼한 뒤 부부간의 애정에만 몰입하지 마세요.
6. 재혼 전에 자주 대화해서 친밀감을 형성하세요.
7. 자녀에게 재혼 동의를 구하세요.
8. 자녀에게 “너희 때문에 재혼했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9. 재혼 전 커플 상담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김미영 소장은 부부갈등, 가족갈등 상담전문가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법학사이며 서울동부지방법원 이혼상담위원, 한국가족복지학회 상임이사, 여성가족부전문강사연합회 상임대표, KBS·MBC·SBS 상담자문의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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