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원장】
흔히 이혼 후의 재결합을 ‘깨져서 다시 붙인 유리잔’에 비유한다. 다시 부부가 됐어도 이혼 전의 감정으로는 못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언젠가는 잔에 다시 금이 가거나 깨져서 물이 줄줄 샐 거라고 한다.
만약 깨져서 이어 붙인 유리잔 안에 새로운 무언가를 꼼꼼히 덧씌운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눈으로 보기에는 깨져서 붙인 잔이어도 물은 안 샌다. 원래 유리잔보다 더 튼튼하고 오래갈 수도 있다. 섣불리 깨버린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면 용기를 내보자. 한 번 깨졌던 유리잔이라도 물이 안 새고 오래오래 갈 수 있다.
CASE 1. 이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남자
형진(가명) 씨는 아이와 헤어지고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쉰다.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원룸이 형진 씨의 집이다. 8개월 전 이혼숙려기간에 원룸을 얻었다. 옷 가방만 들고 원룸에 이사한 날 기분이 이상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형진 씨는 아내와 이혼하기 전까지 살벌하게 싸웠다. 둘은 정말 안 맞았다. 아내는 결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주의자가 되어갔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으면 지적을 했다. 숨 쉬는 것만 빼고 형진 씨의 모든 일을 못마땅해 했다. 좋은 아빠, 좋은 사위, 좋은 남편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괴롭혔다.
결국에는 아내의 목소리도 듣기 싫은 지경에 이르자 형진 씨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다. 사실 아내가 충격을 받아서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내는 반성은커녕 불같이 화를 냈다. 더 싸울 마음도 없었다. 집도, 양육권도 모두 아내에게 줄 테니 이혼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혼하고 나니 5살밖에 안 된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들은 형진 씨와 헤어질 때마다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미워서 이혼했는데 아빠와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쩔쩔매는 아내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이혼 전에는 같이 살면 죽을 것 같았는데 이혼해도 마냥 좋지만 않았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아빠가 된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점점 이혼이라는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CASE 2. 용서를 후회하는 여자
영서 씨(가명)는 요즘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체감하는 중이다. 남편과 재결합한 지 꼭 1년 만에 영서 씨는 또 이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혼한 이유는 남편의 바람이었다. 바람 상대가 기가 막혔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유부녀였다. 그것도 그 여자의 남편에게 연락이 와서 두 사람이 바람피우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이미 끝난 사이라고 했다. 몸이 벌벌 떨리고 피눈물이 났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다시는 한눈팔지 않겠다고 울면서 싹싹 비는 남편을 못 이기는 척 용서해줬다.
그런데 두 사람은 끝난 사이가 아니었다. 영서 씨를 비웃듯 몰래 만나고 있었다. 더는 남편과 같이 살 수 없었다. 이혼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못 살 것 같았다. 마침내 이를 악물고 이혼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이혼 후의 삶도 쉽진 않았다. 이혼 후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은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혼한 게 소문났을까 봐 그렇다는 것이었다. 영서 씨에게도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빠가 바람피운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가 불쌍한 아빠를 쫓아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그 여자와 깨끗이 정리했다면서 집에 자꾸 찾아왔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듯 주말이면 꼭 아이들과 캠핑을 갔다.
아이들은 아빠와 다시 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아빠와 캠핑을 할 생각에 주말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니 자신만 마음을 바꾸면 모두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가까이 주말마다 한결같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 남편을 보니 마음이 돌아섰다. 이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 또 바람을 피우고 있다. 휴대폰에 못 보던 앱이 있어서 터치해봤더니 돌싱소개팅 앱이었다. 대화창을 보니 벌써 만난 여자가 2명이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제 진짜 남편과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았다.
재결합을 꿈꾸는 사람들… 왜?
이혼이 쉬웠던 사람은 없다. 그저 이혼할 당시에 이혼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이혼 전에 미처 못 봤던 선택지가 보이기도 한다. 배려, 노력, 이해, 사과, 심사숙고 등…. 그래서 이혼한 게 후회로 남는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원장은 “감정적으로 이혼하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아내의 중요성을 모르다가 이혼 후에 그것을 깨닫고 자책과 후회를 하는 남성이 많다.”라고 설명한다.
감정적으로 이혼하면 ‘준비 없는 이혼’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겪어야 한다. 자녀 양육의 균형이 깨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배우자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재결합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을 하는 이유는 다음의 3가지가 흔하다.
첫째, 자녀 양육에 배우자가 필요하다.
김미영 원장은 “자녀가 없는데 재결합을 하는 부부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혼으로 인해 한 명이 양육하다 보면 아빠 또는 엄마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해 자녀에게 결핍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럴 때 부모로서 자녀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재결합하는 부부가 많다.
둘째, 이혼남·이혼녀 딱지가 싫다.
아직 우리 사회는 한 번 결혼했으면 안 맞아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관계의 문제가 아닌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혼을 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한다. 이런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곱지 않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재결합하기도 한다.
셋째, 배우자가 필요하다.
배우자가 필요해서 재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되고 그런 경험을 통해 혼자로 사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재결합을 원할 수 있다.
재결합 원한다면… 이것만은 꼭 해라!
서로가 어렵게 선택한 재결합이지만 안타깝게도 재이혼율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까지 했더라도 한번 헤어져 봤기 때문에 ‘헤어져도 어떻게든 살아진다.’‘안 되면 또 헤어지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밝혀져 다시 갈라지고, ‘그 잘못 때문에 이혼까지 했으니까 다시는 안 그러겠지.’라는 생각으로 재결합했는데 반복되는 문제에 질려서 재이혼하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히 배우자가 필요해서, 배우자와 헤어진 것이 후회되니까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재결합해서는 안 된다. 김미영 원장은 “재결합도 과정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감정적으로 재결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이혼 후 재결합 원할 때… 꼭 해야 할 5가지
1. 문제 행동이 교정된 후에 재결합한다!
술, 도박, 폭력, 조절되지 않는 분노 등 이런 문제 행동을 하는 당사자도 나쁜 줄은 안다. 하지만 나쁜 행동을 하는 게 미안하다고 그 행동을 쉽게 고칠 수는 없다.
그래서 자각-자기이탈관찰-교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 행동을 알고 (자각)-자기이탈관찰(그 전의 행동과 다른 지금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 전의 행동에서 이탈하는 것)을 반복하고-교정이 되었을 때 재결합을 하는 것이다. ‘재결합하면 달라지겠지’가 아니라 달라진 후에 재결합해야 한다.
2.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한다.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는 배우자가 그 상처를 치료해 줄 때까지 계속 아프다. 잘못한 사람이 대충 넘어가면 그 상처는 곪고 덧나기 마련이다. 재결합 여부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라도 꼭 진정한 사과를 하고 또 용서하는 시간을 갖자.
3. 이혼으로 상처받은 자녀의 마음을 치유한다.
이혼까지 간 부부의 갈등 속에서 자녀 역시 많이 아파하고 병들었다. 정서나 인지가 덜 발달한 상태에서 부모가 불화를 겪는다면 그 자녀는 부모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상태에서 싸움의 패턴을 저절로 학습하게 되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이혼이라는 큰 소용돌이를 겪은 자녀와도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모는 각각 자녀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재결합 후에는 어떤 생활을 할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4. 피해 의식을 버린다.
‘당신의 잘못 때문에 이혼까지 했고 이제 재결합을 했으니 잘못한 사람이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 또는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으니 앞으로 책임져.’와 같은 생각으로 재결합하면 여전히 불행하다.
김미영 원장은 “재결합을 결심했다면 인간은 모두 완전하지 못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며 “앞으로는 더욱 단단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수용, 사랑, 동반자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5. 죄책감에 갇히지 말자.
상대의 죄책감을 이용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자책감, 죄책감에서도 벗어나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면 과거는 묻어두고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 집중한다.
김미영 원장은 부부갈등, 가족갈등 상담전문가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법학사이며 서울동부지방법원 이혼상담위원, 한국가족복지학회 상임이사, 여성가족부전문강사연합회 상임대표, KBS·MBC·SBS 상담자문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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